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대서양 조약 기구 (문단 편집) === 나토의 [[팽창]] === >'''나토를 확장하는 것은 냉전 이후 미국이 취한 정책 중 가장 치명적으로 잘못된 정책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러시아를 자극하여 그들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외교를 하도록 만들 것이다.''' >'''(Expanding NATO would be the most fateful error of American policy in the post-Cold War era. Such a decision may be expected to impel Russian foreign policy in directions decidedly not to our liking.)''' >---- >'''[[조지 프로스트 케넌]]'''(George Frost Kennan, 1904년 2월 16일 ~ 2005년 3월 17일) (미국의 외교관, 정치가, 역사가. 냉전기 미국의 대소정책의 핵심인 봉쇄전략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다.) >'''Well, if that would be the case that we join, my response would be that: you caused this. Look at the mirror.''' >'''글쎄요, 만약 우리가 (NATO에) 가입하게 된다면, 저는 이렇게 답변하겠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당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거울]]을 보시죠.''' >---- >'''핀란드 대통령 [[사울리 니니스퇴]]'''(Sauli Niinistö) ([[2022년]] 5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 인터뷰 중 [[https://www.youtube.com/watch?v=MhLNBxpo8zY|#]]) 본래 나토는 2차 대전으로 인해 국력이 바닥난 서유럽에 가장 큰 위협이었던 소련의 공산주의 확산을 방지하고 추축국이었던 독일(당시 옛 서독)을 통제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로 창설한 다국적 군사동맹이다. 즉, 소련을 막고 독일(서독)의 패권을 억제하며, 서유럽 안보를 안정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서유럽 국가들은 [[마셜 플랜]]과 함께 전후 재건에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서구권 군사동맹으로써 나토는 냉전 시기 동안 자기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1980년대 후반, 동구권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날 무렵, 미국과 소련은 우호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1989년 말타 회담에서 공식적으로 냉전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또한 START 협정 등을 통해 군축을 확산시키면서 대립을 완화해가고 있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 재통일]] 협상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나토를 더 이상 확장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다.[* Kramer, Mark; Shifrinson, Joshua R. Itzkowitz (1 July 2017). "Correspondence: NATO Enlargement—Was There a Promise?". International Security. 42 (1): 186–192. doi:10.1162/isec_c_00287. ISSN 0162-2889. S2CID 57571871.] 사실 독일 통일 당시 나토에 대한 논의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결국 협상 단계에서 머물고 명문화된 외교문서나 조약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당시 소련 입장에서는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존재하던 시점이라 아직까지는 소련군이 동유럽에 주둔해 있었고, 당시 소련과 서방권은 비공식적인 협상에서 냉전 후 유럽에서 새로운 안보기구에 참여하려고 계획 중이었다. 하지만 1990년과 1991년에 들어 소련의 영향력이 급도로 약해지면서,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 국가들은 [[1991년]] 2월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해체하는데 동의했고, 1991년 6월에는 [[코메콘]]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동유럽에서 소련은 급속도로 영향력을 잃고 결국 1991년 12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소련이 무너지자 서방 국가들은 고르바초프의 연장선으로 친서방 정책을 펼치던 [[보리스 옐친]]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했다. 나토는 [[소련]]이 무너진 이후로도 1999년까지 동유럽으로 회원국을 확장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1990년대 초, 중반에는 러시아와 여러 차례 나토 가입을 논의하면서 군사적으로도 협력관계를 구축하였다. 이와 더불어 1990년대 들어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가 국내정치 사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동안,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서방경제에 합류하기 위해 [[유럽연합]], 나토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당시 나토는 한 때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에 속했던 [[동유럽]] 국가들과 옛 소련에 속했던 [[발트 3국]]을 가입시키면서, 동시에 러시아와 군사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었다. 정당성이라는 요소를 배제한 [[정치현실주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어떤 강대국도 국익의 약화를 얌전히 받아들이지 않으며, 따라서 비록 러시아의 패권주의적 행보가 동유럽 국가들의 '자발적' 나토 가입을 촉발했을지언정 러시아 입장에서는 국경을 맞대는 구소련 국가들의 나토 가입만은 결코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긴다. [[게임 이론]]에 따른 원인과 결과만을 따졌을 경우[* 정당성이라는 요소를 아예 고려하지 않고 행동의 원인과 결과만을 따질 뿐이므로 변호/비판의 시각과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동유럽 국가들이 연달아 나토 가입을 하는 것을 막는게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정치·외교적 위신의 하락을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더 이득이 되었다는 주장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